'명불허전'들이 만났다…빈틈 하나 없는 206분

입력 2023-10-16 17:38   수정 2023-10-17 00:29


오는 19일 개봉하는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의 러닝타임(상영시간)은 3시간26분(206분)이다. 영화를 연출한 미국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수많은 작품 중 전작인 2019년 개봉작 ‘아이리시맨’(209분) 다음으로 길다. 200분이 훌쩍 넘어가는 스코세이지 영화는 이 두 편뿐이다.

일반 영화 두 편을 합친 분량의 작품을 관객이 집중력을 잃지 않고 보게 하려면 우선 드라마가 극적으로 탄탄하고, 주요 연기자가 보는 이들을 극에 몰입시킬 만한 호연을 펼쳐야 한다. 이 두 편이 그렇다. ‘아이리시맨’에선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하비 케이텔 등 수십 년간 스코세이지와 함께해온 노장 배우들이 미국 마피아의 범죄 실화를 실감 나게 스크린에 재현했다. ‘플라워 킬링 문’에서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드 니로라는 걸출한 두 배우가 극을 이끈다. 디캐프리오는 2002년 ‘갱스 오브 뉴욕’부터 스코세이지가 연출한 주요 영화의 주인공을 도맡다시피 했다. 드 니로는 1973년 ‘비열한 거리’와 1976년 ‘택시 드라이버’ 이후 스코세이지의 페르소나 같은 존재였다.

이 영화의 원작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그랜이 2017년 발표한 논픽션 <플라워 문>이다. 본래 오하이오 부근에 있었지만, 서쪽으로 계속 밀려나 결국 1800년대 미국 정부가 오클라호마에 지정한 페어팩스라는 땅에 정착한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인 오세이지(Osage)족의 비극 실화를 다룬다. 1894년 새로운 정착지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오세이지족은 채굴권을 가지고 개발업자에게 땅을 빌려주면서 막대한 부를 얻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미국 정부는 ‘후견인 제도’를 도입했다. 불합리하고 인종차별적인 제도다. 백인 후견인들은 원주민의 재산을 대신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가로챘다. 1920년대 초반에는 수십 명의 오세이지족이 독살 등의 방법으로 살해당했고, 사망 후 토지 수익권은 이들 원주민과 결혼한 백인들에게 넘어가 버렸다.

영화는 비극적 사건을 어수룩한 청년 어니스트(디캐프리오 분)와 원주민 여인 몰리(릴리 글래드스턴 분)의 사랑을 중심으로 풀어낸다. ‘킹’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후견인이자 축산업자인 헤일(드 니로 분)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상처를 입고 막 돌아온 조카 어니스트에게 택시 운전 일을 시키며 몰리에게 접근해 결혼하라고 지시한다.

택시에서 만난 몰리에게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느껴 결혼한 어니스트는 얼떨결에 삼촌의 범죄 계획에 가담해 아내의 자매, 처남, 사촌, 심지어 장모까지 살해하는 데 공모한다. 그다음 타깃이 아내 몰리를 향하자 어니스트의 부대낌은 심해진다.

에릭 로스와 함께 각본을 쓴 스코세이지는 이 끔찍한 사건을 오세이지족의 시각으로 비교적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풀어간다. 감독은 오세이지족의 후손들과 소통하며 사건의 디테일한 면까지 사실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실제로 작품 속에는 44개 배역에 오세이지족 배우가 출연했다. 엑스트라로도 수백 명이 참여했다.

올해 81세가 된 스코세이지의 녹슬지 않은 연출 감각과 편집 솜씨를 만끽할 수 있다. 사건의 기저에 깔린 인간의 근원적인 탐욕과 착취에 대한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디캐프리오와 드 니로는 역시나 ‘명불허전’의 연기를 펼친다. 디캐프리오는 마치 맞춤옷을 입은 듯이 사랑하는 아내와 무서운 삼촌 사이에서 방황하는 어니스트의 나약하면서도 야비한 이중성을 잘 드러냈다. 드 니로는 오세이지족을 착취하고 협박하면서도 스스로를 그들의 진정한 친구로 여기는 모순덩어리 인간 헤일 역을 특유의 공력이 담긴 연기로 멋지게 소화한다.

두 배우 못지않게 세 시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관객을 스크린에 몰입시키는 주역은 몰리 역의 글래드스턴이다. 오세이지족은 아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의 후손인 글래드스턴이 남편을 믿으면서도 의심하는,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양가적인 감정을 말보다 더 유려하게 전달하는 표정 연기가 일품이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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